《 허밍 》 김민수, 로지은
2023.07.05 - 07.29
드로잉룸, 서울
ⓒ 2024 Minsu Kim / courtesy of Drawingroom
허밍버드 신지현 (독립 큐레이터) “허밍(Humming)”은 김민수와 로지은을 묶는 주문이다. 입을 다물고 코로 리듬을 만들어 내는, 어느 정도 즉흥성이 가미된 이 소리는 이들 작품을 앞에 두고 보는 이에게 요청하는 일종의 태도다. 회화를 중심으로작업을 개진하는 김민수와 로지은은 서로 다른 재료와 소재, 감각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룬다. 일견 교차점이 없어 보이는 둘의 작업을 이어주는 일련의 공통점이란 진지함과 즐거움, 느슨함과 긴장감, 상상과 직관 사이 균형점을 찾아 나가는 작업이라는 점일 것이다. 낮고 가볍게 읊조리는 소리를 되뇌며 시«허밍»으로 들어가 보자. 둘의 작업과 더불어 이에 수반되는 태도를 살펴볼 이 글은 둘의 작업을읽어내는 일종의 악보로 기능하겠지만, 일단 악보 없이 먼저 흥얼거려 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김민수 작가의 작업은 일상에서 마주친 낯선 감각을 화면에 끌어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상이란 특별할 것 없이 소비되는 하루의 시간이 모여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때, 김민수는 그 안에서 자신이 느낀 한순간의 (추상적) 감각을 어느 정도 구상적 이미지로 환원되는 지점까지 다듬고 깎아내 타인에게 전달((2023))하기를 시도한다. 오히려 대상을 ‘묘사’하려고 할 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지시하는 바가 아닌 이미지가 담고 있는 전체적인 무드일 것이다. 무드에 대해 살펴보자. 이번 전시에서 그는 새와 자연 풍경이 어우러지는 그림(, (2023))을 중심으로 신작을 선보인다. 언젠가 작가가 빗속에서 러닝을 한 경험에서 비롯된 이 연작 안에 러닝을 한 주체(로서의 작가)는 당연히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과 신체가 담아낸 감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캔버스에 얇게 스미고 번지는 수성 재료(아크릴 물감)의 성질은 그의 작품을 일견 평화롭고 정적인 무드로 이끄는 듯하지만, 마지막 터치로서 행해지는 ‘그 외’ 재료 1. 의 개입은 그의 작업에 긴장감과 동세를 부여한다. 본디 유화는 지워내거나 덮어낼 수 있기에 수정이 가능한 재료이다. 그러나 김민수의 작업 안에서 이 재료가 갖는 고유의 성질은 무효하다. 이는 ‘마지막’이라는 작업의 순서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 아크릴 물감으로 부드럽게 담아낸 (감각의) 풍경 위에 힘 있게 긋거나 뿌려버리는 유화의 터치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그림 자체를 지워버려야 하는 곤란함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순간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재현된 감각과 그 위에 행해진 리듬감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끄집어내 붙잡는 일임을 알아차릴 수 있겠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마지막 터치가 언제나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법. 김민수는 행위가 더해진 뒤의 일에 대해 ‘그다음 화면’으로서 받아들이고 새로이 펼쳐진 조건 안에서 다시 한번 균형점 찾기를 시도한다. 그의 그림은 수정된다기보단 언제나 변화하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해 보인다. 어쩌면 감각의 추상성을 이미지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누구나 읊조릴 수 있는 허밍처럼 부드러움과 아름다움, 고요함과 일상의 무위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스스로 제약을 만들고 당면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써 스타카토와 같은 긴장과 재미, 리듬감을 부여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로지은 작가의 작업은 다소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물고기가 물속에만 있으면 물 밖이 궁금하지 않을까?” “비둘기의 하루를 상상해 보자”. 아무도 하지 않을 상상은 로지은이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그의 그림 속에 주요 등장물인 잉어, 비둘기, 길고양이, 들개 등은 도심 속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그다지 중요도를 갖지는 않는 존재들이다. 인간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보살핌받기도, 방치되기도 하는 이들 존재에게 작가는 인간 시점의 생각과 감정을 투영해 본다. 반쯤 감긴 눈으로 웅크리고 있는 새, 나른하게 낮잠 자는 개,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고양이의 표정에서부터 헐렁한 먹선과 번짐, 어설프게 적어 내린 문자들과 낮은 채도의 분채 사용법까지 그의 작업 내외부를 이루는 소재와 기법, 대상에서 그의 인간 존재를 향한 마음과 모종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연민, 공감, 애착과 외로움, 호기심, 나른함 등이 복잡미묘하게 얽힌 시선 속 감정을 여기서 구태여 하나로 정의내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분명한 것은 로지은의 관심이 인간 존재에게 머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관찰에서 비롯되는 작업임에도 그는 인간을 직접적으로 그리기보단 그 외 대상으로 우회해 담아낸다. 땅에 발 딛는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할 수 있는 지점까지 상상하면서. 로지은이 사용하는 먹에 대해 살펴보자. 본디 먹은 진한 농담 표현과 힘 있는 필력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을 특성으로 갖는다. 유려하고 감각적인 필치에서 비롯되는 생동감, 사실성 등이 예술성의 척도인 전통 동양화와 반대 방식으로 로지은은 먹을 구사한다. 먹선은 두 번 그으면 탁해진다. 오로지 일필만을 허하는 조건 앞에서 그는 머뭇거림과 떨림, 어설픔, 긴장과 쾌감 등 행위에 수반되는 일련의 감정과 태도가 솔직하게 투영된 선을 긋는다. 당연하게도 여기에서 속도감은 찾아볼 수 없다. 숨김 불가능한 먹의 특성으로부터 우리는 그의 작업적 태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표지를 얻을 수 있겠다. 애초에 로지은은 그림 그릴 때의 자신과 그가 바라보는 사회, 그 속의 존재들을 살피는 마음 그리고 이들을 향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담박하게 드러내고 싶었기에 먹이라는 재료를 선택했을지 모른다. 진하고 밀도 높은 먹 작업과 흐린 채색과 농담의 표현, 의도적 번짐으로써 정리되는 그의 원근 없는 화면은 선과 수묵 사이 균형을 만들어 나아가는 과정이다. 먹과 분채, 배접한 한지를 주재료로 사용하며 생활상의 반영, 등장물의 행위와 표정에서 감지되는 해학, 소박한 묘법으로 완성되는 로지은의 그림은 한편 민화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 2. 에서 그가 일정 정도 전통화 요소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로지은이 먹이라는 동양화 전통 재료를 주재료로 고수하면서도 느슨한 필치로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을 위트있게 풀어냄으로써 긴장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화면에 구성해 나간다면, 김민수는 자신의 고유한 감각으로 일상 속 찰나를 인지하고, 이를 회화적 감각으로 담아내면서도 자유로운 재료적 실험을 통해 화면에 입체성과 긴장감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둘은 차이점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 이미지적으로 발견되는 김민수와 로지은의 공통물은 새이다. 그리고 이는 서두에서 요청한 바 있는 전시를 보는 태도, “허밍”과 다시 한번 만난다. 전시 안에서 허밍은 두 작가가 작업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해 나아가는 태도에 대한 비유이다.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그것을 인지한다기보다는 재미이자 또 다른 국면으로 받아들이는 것, 마침내 그 안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은 허밍처럼 흘러나오는 즉흥적이지만 즐거운 순간일 것이다. 한편 ‘허밍’과 ‘버드’가 만나면 ‘허밍버드’, 즉 벌새가 된다. 벌새는 작은 몸집이지만 1초에 80번 날갯짓하며 자유자재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기동력이 뛰어난 새다. 벌새의 자유롭고 끊임없는 날갯짓 속 붕붕소리(Humming)처럼, 두 작가의 시선이 그리는 이미지, 담는 정서와 감각은 일상의 궤적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한다. 재료와 딱 맞아떨어질 균형점을 찾아서. ------------------------- 1. ‘그 외 재료’는 얹히는 성질의 유화 물감뿐 아니라 오일 파스텔((2023)), 스티커((2023)) 등이 있으며 작업 안에서 재료에 대한 작가의 자유로운 실험이자 마침표로서 기능한다. 2. 구도상 호랑이 민화를 연상케 하는 (2023)부터 화조도((2023), 화훼도((2023)), 어해도(, (2023)와 영모도((2023)) 등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